본문 바로가기
  • 꽃처럼 향기롭게, 나무처럼 튼튼히!
보물 탐사 treasure exploration/해외 여행

미국과 멕시코를 다녀와서

by Asparagus 2009. 12. 26.
반응형

해외 여행기 - 미국과 멕시코를 다녀와서

                                                                                                        

☞ 방문국 : 미국서부지역(시애틀, 센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하와이), 멕시코 (멕시코시티)

☞ 방문 기간 : 1996. 9. 10.- 9. 22

 

1.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고

아시아나 항공 HL7253 비행기, 좌석은 17F, 창가에 앉아 난생 처음 하늘을 날았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귓속이 멍해지고 속이 울렁거렸으나 비행기가 지상에서 멀어질수록 편안해졌다.

말로만 듣던 비행기를 처음 타보며 눈물이 다 났다.

 

**살!

남들은 신혼여행 때 다 타 보았다는 비행기를 이 나이에 처음 타 보다니……. 그 동안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며 나는 함성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야호! 나는 이제부터 12일간이나 해방이다. 주부의 역할도, 아이들의 어머니 역할도, 선생이라는 직위도, …,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서 순전히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오리라.'

이런 기회를 가지게 해 주신 교육 관계자 모든 분에게 감사의 마음이 절로 생겼다.

 

2. 교통 문화를 보고 (미국의 여러 도시를 보고)

도로 교통-교통 문화가 우리 나라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편도 4차선 고속도로에서 과속이 전혀 보이지 않고, 끼어들기나 앞지르기 추월하는 차는 찾아볼래야 볼 수가 없었다. 오토바이가 1차선으로 여유롭게 다니는 것이 너무나 이색적이었다. 우리가 탄 관광버스는 40-55마일(시속64-89킬로미터)을 벗어난 적이 없이 언제나 여유를 두고 달렸다. 승용차의 절반이 도요타등 일본 차종이었으며 차종이 아주 다양했다.

 

고속도로 통행료가 없으니 자동차의 흐름이 더 원활했다. 인터체인지에서 주진입로로 들어올 때는 눈치 보지 않고 쏜살같이 들어오는 것이 이 나라의 법규라고 했다. 차선 변경을 거의 하지 않으니 우리 나라처럼 얌체족도 없고 살짝 끼어들고 손을 흔드는 애교족도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볼 수가 없었다.

 

이 나라 사람은 교통법규 어기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즉 법규 어긴 사람을 이상하게 여길 만큼 교통법규를 철저히 지키는 국민성이라고 한다. 그러니 범칙금이 무겁다고 한다.

 

관광버스를 타고 몇 시간을 시내 외를 달려도 교통순경을 볼 수 없었다. 함정 단속 같은 것은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는 나라라고 한다. 갓길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도로에서의 시비라든지 고장 난 차를 고속 도로변에 세워 놓았다거나 도로 위에 자동차 사고 흔적을 남겨 놓은 것을 한 건도 보지 못했다.

 

우리 나라를 떠나 처음 느낀 것이 우리와 너무나 다른 교통 문화였고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나부터도 돌아가면 끼어들기 하지 말고 도로에서 아무리 바빠도 클랙션 사용하지 말고 차선 변경은 가급적 하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주차 문화-불법 주차라는 단어가 필요 없었다. 또한 단속 요원도 없었다. 길 가장자리에 말뚝처럼 박아 놓은 것이 있어 보니 무인 자동 주차기였다. 차를 세워 놓고 돈을 집어넣으면 되는 것이다.

 

센프란시스코에서 특기할 만한 주차 방법은 언덕 위 도로 양쪽에 차를 주차해 놓았는데 자동차의 앞바퀴가 모두 삐딱삐딱하게 세워져 있었다. 가이드에게 물어 보니 자동차의 앞바퀴는 모두 인도 쪽으로 삐딱하게 세워 놓도록 법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즉 브레이크가 풀려 차가 미끄러지더라도 언덕 아래로 구르지 않고 인도 턱에 걸쳐지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우리 나라도 이런 부분까지 신경 쓰는 운전 문화가 형성되었으면 한다.

 

3. 교육 환경을 둘러보고

* 링컨초등학교-사립-

이 학교는 센프란시스코에 있는 사립학교이다. 한적한 마을에 위치한 전교 아동 수가 400명인 소규모 학교이다. 교사 수는 상주 교사17명, 보조 교사 6명(도서관, 자료실등 담당), 교감은 없고 교장1명, 비서1명의 직원 수를 가졌다.

 

마을에서 교육을 관활하며 주에서 보조를 해 주는데 한화 약 8억 원 정도라고 한다. 47세 된 젊은 여교장선생님이 학교를 안내해 주셨다.

붙박이 식탁을 만들어 식사 때만 벽에 붙여 둔 식탁을 꺼내어 테이블로 사용하고, 식사가 끝나면 벽에 세워 붙여 놓고 체육장, 강당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학급당 아동의 수는 25명이다.

 

이 학교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수업에 필요한 각종 소모품 자료실을 만들어 놓은 것인데, 문방구보다도 더 종류가 많았다. 문방사우를 완벽하게 갖추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각종 종류의 색상지를 비롯한 제도용 절단기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교사가 쓰고 싶으면 언제든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실 1/4칸 크기에 진열대를 만들어 없는 종류가 없을 정도로 풍부히 가득가득 담긴 것이 매우 부러웠다.

 

교장실도 교실 1/4크기였고, 교장 책상 하나와 의자 하나가 놓여 있는 우리 나라에 비해 너무나 협소하다 못해 초라할 정도였다. 교장실 옆에 비서실이 있었는데 이곳은 교사를 도와주는 곳이라고 한다.

 

질문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서 나는 "미국에서는 문학 교육은 몇 학년부터 어떻게 가르치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문학 수업이라고 별다르게 없고 다만 표현력을 키우는 방법으로서 말하기·듣기·읽기·쓰기를 위주로 하여 자연스럽게 습득한다고 한다.

 

교사 근무시간은 8:30분에 시작하여 오후 3:30분에 퇴근한다고 한다. 자율적 퇴근이라고 한다. 수업 시간, 마침종 즉 종 울리는 수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학년마다 일률적인 휴식 시간이 없고, 중간 휴식은 20분 주어진다고 한다. 또 토요일 수업이 없고 주 5일 수업이라고 한다. 학제는 킨더가든(유치원)-5학년이다.

 

월반이 있느냐는 질문에 교장선생님이 답해 주셨다. 간혹 있을 수도 있으나 사회성에 맞추어 또래와 같이 공부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셨다. 여교장선생님이 매우 친절하셨고 질문에 성의껏 답해 주셨다.

 

학교 주변은 우리 나라와 전혀 달랐다. 문방구는커녕 슈퍼라든가 가게가 없었다. 넓디넓은 잔디밭 정원을 가진 담장도 나무를 심어 구분한 정도인 삼각 지붕을 한 단층 주택들과 학교가 나란히 붙어 있어 마치 학교도 여느 가정집과 별다르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아담하고 깨끗했다.

 

* 하바트초등학교-공립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이 학교는 공립초등학교이다. 우리 일행이 이 학교를 방문하였을 때 (담장과 교문이 철망으로 되어 있어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교문이 잠겨 있었고, 수위가 열쇠꾸러미를 들고 와서 열어 주었다.

학생 수가 2400명 정도인 LA의 코리안 타운의 중심지 학교인데 상당히 큰 규모의 학교에 속한다고 했다.

 

학생 분포는 남미계통학생이 83%, 한국학생이 15-17% 정도라고 한다. 교실이 모자라서 학교로 봐서는 일 년 내내 수업이 이루어지는 형식이지만 실제로는 학생 부류를 A, B, C학년으로 나누어 방학을 두 달 씩 한다고 한다. 즉 1600명 정도가 학교에 오면 나머지 800명 정도는 방학 기간이라고 한다. 그래도 교실 수가 부족하여 다른 학교로 전학을 보내기도 한다고 한다.

 

우열반 운영에 대해 질문을 했더니 될 수 있는 한 월반이나 낙제를 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영재반이 있어 3, 4학년 중에서 1개 반, 5, 6학년 중에서 1개 반을 운영하는데 담당 교사가 열심히 공부를 가르쳐 올해 디즈니랜드에서 주는 최우수 학급 상을 받았다고 자랑이 대단했다.

 

특수 학급은 특수 교사가 학습부진아 중심으로 15명 정도로 가르친다고 한다. 초임 교사는 4년제 대학 졸업 후 대학원에서 1년 정도 교사 코스를 밟아 교사 시험에 합격한 후 교사 연수를 받아 정식 교사가 된다고 한다. 초임 연봉이 28,000$(한화 약 2320만원)정도인데 경력이 10년 이상 되면 월급이 여러 단계로 나눠진다고 한다. 10년 근무한 교사의 연봉은 대략 50,000$(한화 약 4150만원) 수령한다고 한다.

 

교장선생님이 친절하고 열성적으로 학교 전반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고, 통역은 우리 나라 교포인 여교무선생님이 해주셨다.

 

세상은 넓고도 좁다더니, 교무실에서 삼덕 성당에서 같이 교리 교사를 활동했던 "엘리사벳" 선배를 만났다. 벌써 10여 년 전에 LA 와서 양호 교사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마침 출산 휴가를 끝내고 그저께부터 출근을 했다고 하는데, 그 넓은 미국 땅에서 친했던 교우를 만나서 너무나 반가웠다. 언제 만날 지 기약도 없이 아쉬운 이별을 했다.

 

4. 미서부지역과 멕시코시티를 구경하고

 

* 시애틀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드디어 한국을 벗어나 태평양을 지겹도록 날아갔다. 12시간 비행 후에 도착한 곳은 워싱턴 주 시애틀이다.

 

시애틀-Seattle이란 sound라는 원뜻으로 소리라는 뜻이 아닌 다도해라는 뜻이다. 북위 49。 이고 ,여름은 밤 9시 40분경에 ,겨울은 3시 30분경에 해가 진다고 한다. 이 도시의 특징은 여름에는 습기가 없고 비가 오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나라의 초가을 날씨와 같았다. 구릉 지대로서 주변에 5개의 산으로 이루어진 조용하고 아름다운 도시이다. 환경이 너무나 깨끗했으며, 공기가 맑았다.

시에틀의 공원에서 - 꿈만 같았던, 결혼 후 최고로 자유로웠던 완벽한 나 혼자만의 여행!


이 지방에서의 마을 성립 요건은 첫째 도서실이 있어야 하고, 둘째 공원과 골프장 시설이 있어야 하고, 셋째 장애자 시설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우리 나라와 비교해 볼 때 꿈속 같은 이야기이다.

 

* 센프란시스코

트윈픽스 공원으로 가는 길에 아름다운 숲속에 둘러싸인 곳에 폐교된 중학교 건물을 보았다. 3년 전 폐교한 이 학교는 학교 주변에 인체에 해로운 독소를 뿜어내는 식물들이 자라고 있어 학교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 만약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나무를 제거해 버리고 학교를 보존할 텐데, 부자 나라여서 그 큰 학교도 쉽게 포기하고 자연보호에 앞장서는구나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졌다.

96. 9. 14. 미국 센프란시스코 방문, "17마일 드라이브 해변가"에서
뒤로 보이는 태평양의 수평선과 잎과 꽃이 평생 만나지 못하는 상사초가 핀 해변가에서, 나는 꿈을 꾼 것 같았다. 다시 여길 또 올 수 있을까? 제 뒤의 태평양 바다 너머엔 우리 한국이 있음에 감사 드리며...

 

인구 약 80만 명이 산다는 이 도시는 정말 축복 받은 도시임에 틀림없다.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 경관들이었다. 버스를 타고 미국 들녘을 달리니 정말 광활하다는 단어밖에 어울릴 것이 없다. 그만큼 국토는 끝 간 데 없이 넓디넓었다.

 

* 로스앤젤레스

말로만 듣던 LA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산다고 하지만 저녁만 되면 인적이 딱 끊어지는 살벌하고 적막한 한인 타운이었다. 우리 나라 교포들이 불쌍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동네라는 '비버리 힐스'를 비롯하여 공원 등을 구경하고, 디즈니랜드와 유니버설 스튜디오 등에서 즐거운 관광을 했다.

 

* 하와이

'지상 최대의 낙원'이라는 단어에 어울리게 환상적인 섬이었다. 바닷물이 그렇게 맑고 푸르고 옥색인 것을 처음 보았다. 해수욕하기에 딱 알맞은 바닷물의 수온, 마치 어머니의 뱃속과도 같은 수온, 그 황홀한 해수욕을 일행과 떨어져 나 혼자 네 번이나 했다.(도착하던 날, 이튿날 새벽, 그 날 저녁, 떠나기 전날 새벽)

 

같이 간 일행(남교사 16명, 여교사 나를 포함하여 4명)들 중 한 번이라도 바다 속에 들어 간 사람은 남자 몇 명과 여 교사는 나 밖에 없었다. 같이 간 여교사들은 나의 이런 낭만을 전혀 이해해 주지 못했다. 오로지 '집, 집안 걱정'만 하고 일정이 빨리 끝나 집으로 가기를 원했으며, 여행을 지루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와이키키 해변에서 한 마리의 인어가 되었다. 수영을 좋아하는 나는 그 동안 무슨 삶이 그렇게도 힘이 들었는지, 여유가 없었는지 바다를 그렇게 그리워하면서도 잘 찾지 못했다는 생각이 미치자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실지로 잠도 하루에 몇 시간 자지 않고, 낮잠도 자지 않고 보낸 열이틀이었다. 나는 가는 곳마다 어린 아이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때면 감탄을 했고,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내려다보면 놀람, 그 자체였다. 어느 사람의 글을 읽으니 하늘 아래에 펼쳐진 구름이 마치 솜이불을 깔아 놓은 것 같다고 했는데, 정말이었다. 비행기에서 뛰어 내려 푹신한 솜이불에서 마냥 뒹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번 여행지에서 다른 것은 다 잊더라도 그 푸르른 와이키키 바다 속에서 인어가 되었던 그 때 그 순간을 기억하면 평생을 추억만 되살리며 산다고 해도 행복할 것이다.

 

미국을 요약하자면 미국은 5대 천국이라고 한단다.

첫째, Lady first 즉 여자 천국,

둘째, 동물의 천국,

셋째, 신체장애자의 천국,

넷째, 아이들의 천국,

다섯째, 노인들의 천국인 동시에 남자들의 지옥으로 비유한다고 한다.

 

미국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점은 우선 바닥 문화이다. 한국은 온돌이라면 미국은 카펫 문화이다.

음식 문화에서는 우리 나라가 젓가락과 숟가락 사용이라면 미국은 삼지창 포커 문화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도 알게 모르게 자꾸 미국 문화를 닮아 가니 정말 경계해야 할 일이다.

 

깊이 생각한다면 이렇지 않을까?

늘 먼지를 물걸레로 닦고 사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부지런하고 건강한 생활을 한다면 카펫을 사용하는 그들은 게으르고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영악한 사람들인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격식을 차려 수저로 점잖게 먹는다면 그들은 먹는 도구부터가 살벌함을 띄고 있으니 결코 배워서는 아니 될 카펫과 포크 문화인 것이다. 젓가락 사용을 아이들에게 철저히 가르쳐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 멕시코시티

비행기내에서 멕시코시티가 가까워지니 이상한 행동들이 벌어졌다.

그것은 바로 우리 나라 사람들처럼 멕시코 사람들도 비행기가 착륙도 하기 전에 벌써부터 자기의 짐을 챙겨 통로로 마구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성질 급한 것이 우리 경상도 사람들과 흡사하여 오히려 마음이 놓일 정도였다.

 

비행장에서 빠져나오니 도시 역시 우리 나라의 삼류 거리 같았다. 소란하고 왁자지껄하고 지저분하기는 우리 나라보다 몇 배 더했다. 자동차의 경적을 마음대로 울리고 교통질서도 없고 교통도 상당히 복잡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인구 2500만이 사는 거대도시이기 때문이리라고 이해를 해 주었다. 숙소로 가면서 보니 도로가 매우 혼잡스러웠다. 네거리에는 우리 나라처럼 차들이 넘쳐흘러 길이 꽉꽉 막혀 있고, 이런 곳에는 어김없이 "도로공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즉 우리 나라는 호두과자나 뻥튀기, 오징어 등을 팔지만 여기 사람들은 도로에서 자기의 묘기-불을 입에 넣었다가 뱉어내는 행위 또는 체조를 하거나 피에로 옷을 입고 이상한 행동을 함-를 보여주고 운전자에게 다가가면 운전자는 창문을 열고 동전을 주는 것이다. 멕시코시티의 거리는 곳곳마다 너무나 불결하고 지저분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인정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이상하지? 세상살이가 다 그런 모양? 부잣집에 가면 공연히 주눅이 들지만 좀 못사는 집에 가면 저절로 편안해지는 마음을 가지듯이 나라도 그런 모양이다.)

 

다음날이 마침 독립 기념일이어서 민족 대축제 전야제를 한다고 거리가 울긋불긋하고 가로수마다 멋있게 꾸며 놓았다. 인류 문화 박물관과 피라미드 보았다. 아무튼 멕시코 사람들에게서 친밀감을 느껴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멕시코가 좋아졌다. 다시 가보고 싶은 나라였다.

 

* 사족

학교에 돌아와서 직원 연수회시 방문 소감을 말할 기회가 주어졌다. 내가 가 본 여행지들을 다시 회상하며 이야기 하니 너무나 감개무량했다. 그 날들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감동을 받은 장면들은 울먹이기까지 했다.

 

다 듣고 난 칠십 여명 남녀 동료 교사들이 박수를 치며

"이제까지 나라에서 보내 주는 해외여행 연수는 별로 선호하지 않았는데, 조 선생의 말을 듣고 해외여행 갈 결심을 하게 되었다."

고 같이 기뻐해 주셨다.

 

이듬해 실지로 4분 교사가 해외 연수에 참가했다. 다음 이듬해는 더 많은 교사들이 가기를 원했으나 안타깝게도 IMF라는 괴물을 만나고 꿈을 접어야 했으니…….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는 적극 활용하는 것이 맞는 말이다. (1996.9.30)

-------------------

13년전 해외 여행기록입니다.

여행지에서 보고 느낀 것을 다시 읽어보니 여행지에서의 신선함과 그 나라에 대한 문화 충격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한번 밟은 땅, 언제나 다시 가 볼까 하면서 매일 매일을 가슴설레이며 다녔던 그때와 비교하여 이제 나이 들고보니 해외 여행 가는 것 자체가 두려움으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여행은 젊을 때 힘 닿는 한 많은 곳을 구경해보아야 하나 봅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