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전이었다.
둘째와 영상채팅을 하다가 문득 아들 두발에 대해, 이야기 나눈 것이 아니라 호통을 쳤다.
"너, 정말 이발 안할 거야?"
"네, 이발 하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아무튼 뭐, 그냥 기르면 안되어요?"
"안돼. 이제 더 이상 못 봐 줘. 삼 개월 있다 온다했을 땐 좀 길어도 그냥 그렇게 봐 주려고 했는데, 너 거기 간 지 벌써 8개월이 넘었잖아? 맙소사, 8개월이나 이발을 하지 않았다니... 그게 말이 돼?"
"그냥 계속 기를래요."
"안돼, 당장 내일 이발 하러 가."
"이발 어디에서 하는 지 모르는데요."
"뭐? 그게 말이 돼? 그럼, 거기 사람들은 어떻게 이발하지? 전부 너처럼 머리 기르냐? 인터넷으로 검색하여서 미장원인지 이발소인지 찾으면 되잖아? 엄마가 머리 잘라 주러 거기까지 갈까? 그리고 며칠 있으면 너도 샌디에고에 학회 참석하러 갈텐데, 사람들이 뭐라 그러겠어? 신언서판이라 했어. 사람이 차림새가 단정해야지. 이제 너 머리 긴 것 도저히 못 봐 주겠다. 당장 잘라. 낼 당장!"
그리고 채팅을 끝냈다.
얼마 후 아들이 보내 준 메일을 읽었다.
2010년 5월 15일 오전 1:54
흐응? 엄마?
요즘에는 실험이 잘 안되서 큰일임 흐응 ㅠㅠ 다시 첨부터 차근차근해야겠음 흐응;
지난주에는 이발하러 못갔고, 미리 전화로 예약해야된다해서 내일 토요일에 버스타고 머리 자르러 갈거임 흐응 근데 머리 얼마나 짧게 자르지? 흐응? 그냥 아줌마가 해주는대로 잘라야지 뭐 흐응 흐응 ㅠㅠ
머리자르고 나면 사진찍어서? 아니다 그냥 영상채팅하면 되겠다 ㅎㅎㅎㅎ
ㅃㅃㅇ 흐응~
그리고 그 다음날 영상 채팅을 하여서 이발한 모습을 확인했다.
"엄마, 아줌마가 머리카락 이상하게 자른 것 같애. 흐응"
하며 연신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짧게 자른 머리카락에 대해 이야기한다.
"뭐라하노? 엄마가 보니 너 예전 모습 되찾았구마는... 이발하니 저래 단정하게 보이는구만... 너무 너무 잘 잘랐다. 인물이 훤하다."
사근사근, 소근소근 이야기 하면 먹히지 않다가, 버럭 고함 한 번 지르면 그때서야 실천하는 것은 아빠나 아들이나 똑같아요. 언젠가는 해야 할 일에 대해, 엄마는 절대 버럭 하고 싶지 않은데, 현실은 꼭 한번씩 버럭해야만 그제서야 알아듣는 이 모순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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