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2일 토요일 흐렸다가 햇볕나다가 다시 흐리다가...
아침 출근길, 돼지도 함께 동행했습니다. 왜냐구요? 퇴근하자마자 양지집으로 가서 서울에서 내려오는 똘지와 상봉해야 하니까요. 다시 일년 전의 일상으로 되돌아간다고 생각하니 아침부터 마음이 들떴습니다. 교실로 아들을 데리고 쑥 들어가는 모습보다 깜짝 이벤트로 우리 반 아이들을 살짝 놀래켜 주고 싶었습니다.
어떤 깜짝 이벤트?
아들은 건물 곁에 잠시 숨겨 놓고, 신호를 보내면 뒷문으로 들어오라고 말하고 교실 앞문으로 들어갔습니다. 인사를 한 후, 평소 아이들에게 한번씩 보여 주는 마술쇼에 쓰이는 도구 중 하나인 커다란 보자기를 가지고 뒷문에 섰습니다.
"애들아, 오늘은 사람이 보자기 속에서 나오는 마술 보여 줄게. 어떤 사람이 나올 지 상상해 보세요. 수리수리 마수리 나와라, 짠!"
보자기를 벗기는 순간, 그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돼지,
"안녕? 너희들을 만나게 되어서 반가워."
"와~ 정말 형아가 나타났다."
"오빠야다."
"선생님 아들이다."
우리 반 아이들은 환호를 하고 난리가 났습니다.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는데 평소보다 좀 힘들었습니다.
'아. 귀여븐 녀석들. 아들 앞에서 샘 권위 안먹히게 만드네?'
우리 반 아이들이 동화책을 꺼내서 읽을 동안, 화장실에서 밀대를 가져와서 아들에게 주며 말했습니다.
"너, 우리 교실 방문한 기념으로 엄마 대신 청소 좀 해다오."
밀대 청소를 다 마친 아들을 전학 가고 난 뒤 비어있는 자리에 앉게 했습니다. 그리고 늘 하던 대로 아침 자습 시간에 받아쓰기를 했습니다. 돼지에게도 시험지를 주면서 시험을 치게 했어요. 결과는 참담합니다.
왼편 우리 반 아이 시험지 오른 쪽 돼지 시험지.
평소 우리 반 아이들 시험지 매기는 방법대로 매겼어요. 32명 중 백점이 20명인데, 돼지는 93점 받았습니다.^^;; 띄어쓰기 못해서 2점 감점, 글씨를 소심하게 써서 5점 감점, 그래서 93점을 받았거든요.
"어머? 우리 반 친구들이 선생님 아들보다 훨씬 더 똑똑하네요? 선생님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때 받아쓰기 70점 받았을 때도 있었어요. 오늘 선생님이 참 기분 좋습니다."
내 말에 우리 반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습니다. 돼지보다 점수 많이 받은 아이들의 어깨가 으쓱으쓱한 날입니다.
둘째 시간이 되었습니다. 돼지에게 미국에서 무슨 일을 하고 왔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는 시간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오늘 같은 경우가 앞으로 두번 다시는 없을 것 같고, 저 또한 아들이 우리 반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줄 지 궁금하였습니다.
돼지의 특강이 시작되었습니다.
까만 눈망울을 반짝이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특강 선생님을 바라보는 모습이 진지합니다. 아이들 표정 하나하나가 다 틀리지만 귀기울여 듣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세계 지도를 펼쳐놓고 한국과 미국의 위치를 이야기하며 서두를 꺼냈습니다.(도입 점수 만점입니다.^^)
한국(남한)과 미국 땅덩이 크기를 비교해 주더군요. 대략 1:100배 정도의 크기라고.(저도 처음 알았어요,ㅠㅠ)
*참고: 남한 면적 99,585㎢, 북한 121,129㎢. 합 약 22만㎢, 미국 면적 938만 4,677㎢
아들이 가 있었던 워싱턴주 시애틀, 워싱턴 대학을 확대하면서 보여주고....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질문할 시간을 주더군요.(눈높이 교수법을 적절히 하여 아이들 정신을 쏙 빼놓던 장면)
아이들에게 박테리아 이야기는 압권이었습니다. 엄마인 나도 아들이 현미경으로 늘 들여다 보며 연구하고 있는 박테리아 모습을 처음 보았어요.
어린아이들도 처음 접하는 이야기는 신기해서인지, 한 시간 동안 자세 하나 허트러지지 않고 진지하게 설명 듣는 모습에 제가 더 놀랐습니다.
일요일이 지나고 월요일날 아이들이 가져온 일기장을 읽어보았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아들에게 들은 이야기들을 써놓았더라구요.
내용도 그림도 너무 사실적으로 잘 표현했습니다.
특강을 진지하게 듣더니 그림도 박테리아를 그려놓았습니다.
먼훗날, '선생님 아들이 와서 들려 주었던 이야기'가 아이들 가슴에 남아서 자연계 과학자가 한 명이라도 탄생되길 맘 속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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