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칼, 그 편리함 뒤에 도사리는 무시무시한 칼날들.
2011년 1월 10일 월 맑음
채칼로 오른손 엄지손가락 한 귀퉁이를 날린 지 오늘로 보름째 되는 날입니다, 드디어 새살이 다시 돋아나서 없어진 부분이 다 채워져 있었습니다. 꼬리가 잘리면 다시 생겨나는 절지동물처럼 우리 몸도 다시 자라나다니... 난생처음 겪어보는 일이어서 신기하기 그지없습니다.(ㅠㅠ 이기 신기하다고 감탄할 일 인강?)
때는 2010년 12월 26일 일요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2월 24일 겨울방학 종업식 하자마자 부리나케 양지로 내달렸습니다.
아이들도 만나고, 다육이도 만나는 설렘. 아니 무엇보다도 새벽에 일어나 출퇴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행복감에 마음은 하늘에 닿을 듯했습니다. 기숙사에서 내려온 아이들을 만나서 외식을 하고 집에 왔습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저녁은 우아한 식탁을 꾸미고 아이스와인 한 잔씩 하며 건배를 하려고 했어요. 진정으로...
그랬는데 東이 아침부터 배추 다섯 포기를 다 잘라놓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김치 절이는 것은 시간을 따져서 해야 낮에 김치를 담을 수 있을 텐데... 아이들 다 보내놓고 느긋이 김치를 담으려 한다는 내 말을 왜 무시하고... (이런 것은 도와주고도 좋은 소리 들을 수 없어요.ㅠㅠ) 소금 간 해 놓은 것이 저녁때 다 절여진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한 밤에 김치를 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김치 속에 넣을 무랑 당근을 채칼로 잘 썰었습니다. 워치 유어 핑거즈. 채칼에 쓰인 대로 조심조심하면서요.
채칼을 사용하면 칼질에 비해 손목에 무리가 가지 않고 무, 당근 등을 모양 있고 쉽게 잘 썰 수 있습니다.
채칼 사용 시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모델이 쥐고 있는 것 잘 보세요. 자투리 채소를 끼워서 손가락 방향이 채칼 날에는 절대로 닿이지 않도록 채칼 가장자리에 올려져 있습니다.
이 도구에 자투리 무나 당근 등을 끼운 후 채칼을 잡고 아래 위로 밀면 결코 손가락이 다치지 않습니다.
채칼 세 종류 - 아주 굵은 채, 가는 채, 중간 채 써는 칼날입니다.
무와 당근을 어여쁘게 잘 썰고, 멸치젓을 달여서 걸러놓고, 찹쌀죽을 끓이고, 다시마, 양파, 무 등을 넣어서 육수를 끓였습니다. 고춧가루, 생강 등등을 육수에 넣고 김치 버무릴 준비를 다 마쳤습니다. 한 밤중에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서 김치를 담았습니다. 통에 담고 나니 새벽 네시가 지났더라고요. 잠자러 방에 들어가려니 몇 시간 잘 것 같지도 않아서 그냥 아침 준비를 했습니다. 앞으로 한 달은 펑펑 놀텐데, 날밤 하루 샌 것조차도 행복했어요.
아침을 잘 먹고 나서 방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점심때가 되었습니다.
계란말이도 하고, 오징어도 삶아놓고, 연근 조림도 만들었습니다. 식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생각하며 오징어에 곁들일 오이를 썰었습니다. 마침 김치 담을 때 사용했던 채칼이 눈에 띄었습니다. 평소엔 오이를 칼로 썰었는데... 채칼로 오이를 일정하게 썰었습니다. 자투리가 되어가려 하기에 한 번만 더 썰고 오이 끝을 버리려고 했어요. 그 생각과 함께 한번 더 채칼 위로 오이를 미는 순간 엄지손가락 끝부분이 이상했습니다.
얼른 왼손가락으로 채칼 위로 지나간 손가락 부분을 눌렀습니다. 잠시 후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 장난이 아닙니다. 별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그깟 오이 끝 한쪽 덜 먹으면 되지, 그 한쪽을 더 먹겠다고 이런 무모한 짓을?'
'아니다. 안전 도구를 무시하고 용감하게 그냥 칼날 위를 왔다갔다한 나의 무모함이...'
'아니다. 東이 내 의견 무시하고 날 도와준다고 배추를 잘라놓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공연히 남편을 원망하면서 방으로 뛰어갔습니다. 피를 보고 너무 당황한 나머지 밴드 생각도 나지 않았어요. 문득 언젠가 샤르님이 밴드를 몇 통이나 보내주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서랍 속의 밴드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방 안에서 일일 밴드를 꺼내어 붙여도 피가 멎지 않아 자꾸 갈아대는 나를 보며 아이들은
"엄마, 침착, 침착."
하며 저희들이 더 겁을 먹은 것 같았습니다.
"응, 엄마 괜찮아, 밴드를 붙이고 손으로 꼭 눌렀어. 팔을 위로 들어 지혈시키잖아?"
밴드를 다섯 개 정도 갈고 나니 지혈이 좀 된 것 같아서 방에 누웠습니다. 잘 거둬 먹이려고 한 것이 엄마의 아차 실수로 아이들은 점심을 먹다 말 다했습니다. 아이들은 아무래도 제가 불안하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엄마, 응급실 가야 되어요. 지금은 지혈되었지만, 그냥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요."
東이 운전하여서 용인시내 응급실에 갔습니다. 다행히 응급실은 한산하여서 금방 치료를 할 수 있었습니다.
"상처가 좀 심하네요? 붕대에 피가 배어나면 한밤에라도 당장 응급실로 오세요. 아무는데 2주 이상 걸리겠습니다. 이틀에 한 번씩 치료하러 오세요."
"지문이 없어진 것 아닙니까?"
"떨어진 살점은 다시 자라나니 걱정하지 마세요."
주사를 맞고 집으로 왔지만 밤새 쿡쿡 쑤시고 아파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계란 크기만큼 퉁퉁하게 감아준 것이 다 이유가 있더라구요. 붕대 위까지 통증이 전달될 정도로 쑤시고 아팠습니다.
이틀 뒤, 다시 병원에 가니 이번에는 상처부위가 닿으면 안 된다고 이렇게 보호대를 씌워 주었습니다.
참, 그동안 반찬 만들면서 칼로 더러더러 베어는 봤지만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은 처음입니다.
보호대 위로 다시 붕대를 감아 주었습니다.
방안에 누워 있으니 손가락 한 부분으로 인해 온몸이 쑤시고 아픈 것 같았습니다. 졸지에 東이 식사 담당 반장이 되었습니다.^^;; 방에 누워서 인터넷을 하다가 샤르님에게는 이렇게 수난을 당했던 손가락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몰랐어요. 샤르 님이 이렇게 신경 써 주실 줄은... 난 그냥 병원에 치료하러 다닌다며 말씀드렸더니만, 이틀도 안되어서 약을 한가득 보내주셨습니다.
2010.12.29 샤르님이 보내주신 상처치료약품입니다.
병원에 가면 소독 한 번 쓱 해주고 붕대 감아주는 것이 다였다고 하니, 병원 그만 다니고 집에서 소독하고 항생제 약 먹고, 연고 바르면 속히 낫는다는 친철하신 편지와 함께요. 물이 안 들어가도록 하는 손가락 고무장갑까지...
하루에 세 번씩 항생제를 먹고 소독을 한 후, 샤르님이 보내주신 연고를 나흘 째 바르니 드디어 진물이 그쳤습니다. 그때부터 메디덤을 붙였어요. 메디덤 효과가 정말 좋았어요. 새살이 돋아나는 것이 보이는 겁니다.
손가락 주변 피부가 다 벗겨지고 아직도 주변 살점 부분의 감각에 둔통이 느껴지지만 모레쯤은 손에 물을 넣어도 될 것 같아요.
채칼, 당장 버리겠다고 했지만 돌이켜보니, 제가 사용법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써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의 눈에 뜨이지 않는 곳에 잘 보관해 두고 채칼을 사용할 땐 필히 안전기구를 꽂아서 사용하여야겠습니다.
샤르님, 고맙습니다. 여러 모로 고맙습니다. 그리고 끼니마다 식사 잘 챙겨준 울 신랑님, 고맙습니다. 손가락 다 나으면 더욱 맛있는 요리, 정성껏 잘 만들어 드릴 게요.
그래도 손가락 하나만 다쳐서 맘 속으로 고맙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으로 하나 깨달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나 자신의 몸이 제일 소중한 것을...
내가 건강해야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더 잘해줄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채칼 사용할 때 저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더욱 주의하세요. 아무리 귀찮아도 반드시 안전기구를 끼워서요.
'전원 탐사 rural exploration > 녹색 장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정원에 서다 (0) | 2011.01.17 |
---|---|
우리 집으로 출퇴근하는 흰돌이 (0) | 2011.01.12 |
군고구마 만들기 (0) | 2011.01.06 |
눈 내린 날의 소묘 (0) | 2010.12.28 |
우리 집에 황금 거미 출현하다. (0) | 2010.11.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