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더워도 밥맛이 없지요? 그럴 때는 이렇게 밥상 한번 차려 보세요.
우리가 자랄 때는 어쩌다 한번씩 소고기 국을 끓여 먹었습니다.
하얀 쌀밥에 빨간 김치와 무우 납작하게 썰어넣고, 대파를 넣어서 오랜 시간 동안 끓인 소고기국, 집에서 담근 간장 한 종지가 밥상에 올라온 날은 밥이 꿀맛이었습니다.
소고기국이라고 하니 제가 여섯 살이던 어느 겨울 유년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둥근 밥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소고기국이 상 위에 올라왔습니다. 엄마가 놋그릇에 각자 소고기국을 한 그릇씩 놓아주었습니다.
저보다 아홉살이나 더 많은 큰오빠가
"동생아, 소고기 국 얼른 무라, 빨리 안 먹으면 초 생긴다."
"응? 큰오빠야, 늦게 먹으면 국에 와 초 생기는데?"
제 말에 아버지도, 엄마도 웃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니 큰오빠말이 맞다. 초 생기기 전에 뜨거울 때 얼른 무라."
전 도무지 그 말을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식구들이 밥숟가락 놓을 때쯤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야, 내 국이 이상하데이. 입에 쩍쩍 달라붙어서 못먹겠데이."
큰 오빠가 내 머리를 살짝 쥐어박으며 말합니다.
"거 봐라, 빨리 무라카이, 초 생겼잖아, 이제 니 그 국 못 먹는다."
여름이면 친정 엄마는 가지로 무침도 해 주시고, 오이를 채썰고 삶은 가지를 죽죽 찢어서 커다란 양푼에 한가득 만든 냉국을 해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풍요해진 요즘은 제가 어렸을 때 질리도록 먹었던 그때 그 시절의 음식이 웰빙 음식이 되었습니다. 저도 여름이면 친정 엄마가 해주신 음식을 따라서 해 먹습니다.
텃밭에 조금씩 심은 농산물을 즉석에서 따와서 저녁 반찬을 만들며 아흔 세 살이 되신 친정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텃밭에서 갓 딴 우엉잎입니다.
친정 어머니가 즐겨 드시는 우엉잎, 저도 친정 어머니 입맛에 길들여져서 우엉잎 반찬을 참 좋아했습니다만, 언젠가부터 우엉잎이 사장에서 사라졌습니다. 먹어본 적이 십 년도 넘은 것 같아요. 운 좋게도 지난 해 친정 어머니께서 씨앗을 구해 주셨어요. 그 덕분에 올해 텃밭에 처음으로 조금 심어보았습니다.
씨앗을 뿌리며 이웃에게도 나누어 주려고 하니, 모두들
"우엉잎을 다 먹어요? 어떻게 먹는데요?"
제가 설명해 주어도 이해를 못하시는 것 같더라구요. 아, 물론 저 이외엔 아무도 심으려고 하는 분이 없었습니다. 요리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삼베 보자기를 찜기에 깔고, 물이 끓어서 수증기가 오르면 깨끗이 씻어놓은 우엉잎이랑, 토막내어서 밀가루 입힌 가지와 역시 밀가루 묻힌 고추를 찜기에 넣습니다. 맨 마지막에 우엉잎을 얹고 찜기 뚜껑을 덮습니다.
찜기에 수증기가 오를 동안 냉국 만들 재료를 준비했습니다. 느타리 버섯 데친 것과 오이 대충 채썬 것, 찢어놓은 찐가지를 볼에 담은 다음, 마늘 몇 조각 찧어서 넣고, 참기름, 깨, 간장을 넣어서 무쳐놓습니다. 밥 먹기 직전에 시원하게 만들어놓은 냉수를 부으면 완성입니다.(무농약 오이이니 당연히 껍질째 썰었어요)
냉국 재료 다 만들고 나니 찜기 속에 든 고추, 가지, 우엉이 알맞게 쪄졌습니다. 접시에 담고,
표고버섯, 백합조개, 중멸치, 다시마 넣고 끓인 강된장으로 우엉잎 한 장 손바닥에 놓고 밥을 얹은 다음, 먹으면 됩니다.
오분도 쌀과 찹쌀, 대두콩을 넣어서 지은 밥.
여름철 더위로 입맛 잃었을 때 이렇게 먹으면 절로 밥이 넘어가요.
* 잠깐!
먹을 수 있는 우엉잎은 우리 나라 토종 우엉입니다. 우엉잎 맛은 담백하고 단맛이 아주 살짝 돌아요. 봄에 씨앗 뿌리면 가을까지 잎을 떼어서 반찬용으로 먹습니다. 가을엔 뿌리도 캐어 먹을 수 있지만 우엉 굵기는 젓가락보다 조금 더 굵고 길이도 2,30센티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엉 뿌리를 장만하여 먹기엔 아주 번거롭고 불편합니다.
반면 일반적으로 재배하는 우엉은 뿌리가 실하고 길이도 1미터도 넘게 자라기 때문에 보통 기계로 우엉을 캡니다. 우엉잎은 맛이 너무 쓰기 때문에 먹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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