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가스렌지 위에 냄비를 올려놓고 까마득히 잊어버리다니... 아침이 되어서야 문득 생각나서 급히 주방으로 달려갔습니다. 스텐레스 전골 냄비 뚜껑을 열어보니 새카맣게 숯덩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저도 이런 글 올리게 될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게 무슨 자랑이라고...ㅠㅠ 그렇지만 냄비 새카맣게 태우고 속상해하는 주부들이 더러 있잖아요? 앞으로 냄비 태워도 속상하지 말고 저처럼 이렇게 탄 냄비를 벗겨냈으면 하는 바램으로 용기 내어 글 올립니다.)
숱검댕이가 된 냄비 속
열받아 함께 타버린 냄비뚜껑 속
지난 주말 텃밭에서 캔 울금으로 울금편강을 한 냄비 만들었습니다.
잘 만들어진 울금 편강을 들어내고나서 냄비에 들러붙은 설탕이 아까워서 울금 삶았을 때 나온 물을 들어부었습니다. 저녁 먹을 동안 서서히 잘 달여지라고 가장 약하게 나오는 가스불에 냄비를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곤 까마득히, 아주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저녁 산책도 가고, 잠도 푹잤습니다. 이튿날 새벽에 남편이 가스불을 껐다고 합니다. 그냥 두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벌렁벌렁합니다. 울금차 한 잔 만들어 먹으려다 집 태워 버릴 뻔했던 이 어마어마한 사건, 그 넘의 정신이 어디로 갔는지...
새카맣게 탄 냄비가 식으면 물을 붓습니다. 마침 귤껍질이 있기에 함께 넣었습니다.(귤 껍질 대신 사과 껍질, 혹은 감자 껍질, 커피 찌꺼기를 넣어도 됩니다. 이것도 저것도 없으면 물론 안넣어도 되구요.)
평소 주방세제 대용으로 쓰는 베이킹 소다, 2배식초를 준비합니다.
베이킹 소다 한 스푼, 식초 한 스푼을 물 부어 놓은 냄비에 넣습니다. 그리고나서 중불에 약 20분 정도 달입니다.
이십 여분 뒤, 냄비를 가스레인지에서 들어냅니다. 냄비 뚜껑은 이렇게 달인 물에 몇 번 살짝 돌려 줍니다. 뜨거운 물에 손 데이지 않게 조심하면서요.
철수세미, 수세미, 매직스펀지 준비 합니다.
우선 철수세미로 냄비를 살짝 닦으면 덕지덕지 눌었던 내용물이 아주 쉽게 벗겨집니다.(탄 내용물이 많으면 먼저 숟가락으로 살살 벗겨주어야겠지요?)
그런 다음 수세미로 냄비바닥을 힘주어 닦습니다.
그 다음에 매직스펀지로 닦아줍니다.
냄비 뚜껑이 이렇게 다시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냄비 바닥도 본래 모습으로...
삼 십 여분 투자하여 십 이년 손때 묻은 본래 냄비 모습을 찾았습니다,
닦으면서 새냄비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즐겁게 느껴졌습니다만, 이제와 생각하니 오래도 썼는데 닦지 말고 그냥 버릴걸... 신제품 스텐레스 냄비를 다시 사는 것도 삶의 지혜 아닐까 싶은 요런 마음도 생기더라구요.^^
그렇지만 꺼진 가스불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만든 집 태워먹지 않고 냄비만 태운 이 어마어마한 사건에 감사 드립니다요. 참, 화장실에서 나올 때 어떻게 전기불을 꺼나요? 문 닫고 스위치 내리지 말고, 스위치 내리고 문 닫으면 주인 없는 화장실에 불이 저 혼자 안켜져 있답니다. 마찬가지로 부엌에서 벗어날 땐 무조건 가스 스위치 내리기를 이제부터 잊지말고 꼭꼭 실천하려고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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